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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 격리·강박 때 설명의무 다해야

정신질환자 격리·강박 때 설명의무 다해야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7.02.01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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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여부 환자 '자기결정권'...복지부 지침도 설명의무 부과
서울고등법원 "의료진 판단만으로 격리·강박 시행해선 안돼"

▲ 서울고등법원 전경
정신질환자를 치료 목적상 격리·강박할 경우에도 본인이나 가족에게 설명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다.

서울고등법원 제17민사부는 A씨의 가족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2억 6955만 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2015나2015007)에서 1억 458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정신분열병 증상으로 3차례 국립 B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2012년 12월 17일 정신분열병이 재발한 A씨는 국립 B병원에 입원, 면담·약물치료를 받았다.

B병원 의료진은 A씨가 뛰다가 바닥에 몸을 던지는 등 행동조절이 되지 않자 2012년 12월 17일부터 27일까지 11일 동안 총 9회에 걸쳐 최소 2시간에서부터 최대 13시간 30분에 이르는 강박치료를 실시했다.

B병원 의료진은 2012년 12월 27일 12시 45경 병실에서 엎어진 상태로 쓰러져 있는 A씨를 발견했다. 외상은 없었지만 1분간 대답이 없고 숨을 "푸" 내쉬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활력징후는 혈압 101/68mmHg, 맥박 54회/분, 호흡수 17회/분으로 측정됐다.

B병원 의료진은 A씨를 부축해 안정실로 옮겨 눕히고, 안정간호를 위해 3포인트 강박을 실시했다.

A씨는 12시 50분경 눈을 크게 뜨고 소리를 지르며 숨을 몰아쉬었고, 간호사의 손짓에 눈을 깜빡이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등 의식이 없었다. B병원 의료진은 A씨의 상태를 의사에게 보고하고, 수액을 투여했다.

C의사는 12시 52분경 A씨 상태를 확인한 후 상급병원으로 전원키로 결정하고, 산소를 공급하면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12시 55분경 격리·강박을 종료하고, A씨를 D대학병원으로 이송했다. A씨는 D대학병원 이송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결과 사인은 '폐동맥혈전색전증'으로 판명됐다.

A씨 가족은 치료 과정에서 의료상 과실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한 잘못이 있고, 설명의무도 위반했으므로, 피고는 소속 의료진의 사용자로서 망인 및 망인의 가족이 입게 된 모든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고 병원 의료진은 강박치료 시행 시 1시간마다 망인의 상태를 살피고, 규칙적으로 활력징후 및 강박 부위의 혈액순환 여부를 점검했으며, 망인의 자세를 변경해주고 수동적 관절운동 가능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팔· 다리를 움직여 주는 등 보건복지부의 격리 및 강박 지침을 준수했다고 항변했다.

또한 망인의 증상에 따라 2 내지 3포인트로 강박의 정도를 조절해 신체 일부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망인은 체질량지수 상 비만에 해당되고, 클로자핀을 7년 이상 복용하는 등 폐동맥혈전색전증을 초래할 수 있는 다른 요인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폐동맥혈전색전증이 전적으로 강박치료로 인한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거대 폐동맥혈전색전증의 경우 발병 후 1시간 내에 심정지 등을 초래해 급사할 위험성이 높고, 사망 전에 이를 미리 진단하여 치료하기 어려우므로 폐동맥혈전색전증을 예측하거나 피할 수 없었다는 점 등에 비추어 강박치료 실시와 사망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보건복지부의 격리 및 강박 지침과 B병원의 격리 및 강박 관련 규정은 모두 '강박 시행 시 최소 2시간 간격으로 환자의 팔· 다리를 움직여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B병원 의료진이 격리 및 강박 지침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데 무게를 실었다.

병원 의료진이 망인의 폐동맥혈전색전증을 예방하기 위해 압박 스타킹을 착용하게 하거나 항응고제를 사용하는 등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도 들었다.

재판부는 "즉시 강박을 실시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응급상황이었다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가져오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면서 "의료진의 강박치료 실시를 망인에 대한 치료방법의 하나로 수인하였다거나 망인 또는 망인의 가족의 승낙이 명백히 예상되는 경우라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신보건법 제46조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격리 및 강박을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B병원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정신보건법 제46조는 환자의 격리나 강박의 사유, 장소, 전문의의 지시 및 진료기록부 기재 의무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 환자나 보호자에 대한 설명의무에 대해 명시하지 않고 있다"면서 "격리 및 강박이 환자의 신체를 직접 구속해 흡인성 폐렴, 혈액순환 장애 등의 신체적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행위임이 인정되는 이상 그 시행 여부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문제되는 사항"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망인의 경우 정신분열병 증상 치료를 위해 입원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던 점, 강박치료는 환자의 신체를 직접 구속함으로써 흡인성 폐렴, 혈액순환 장애 등의 신체적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등 그 자체로 위험성이 수반되는 의료행위인 점, 망인에 대한 강박치료 시행 시 1시간마다 망인의 상태와 체위를 기재하고, 망인이 깨어있는 동안은 1시간 간격, 망인이 수면을 취하는 동안은 3시간 간격으로 망인의 활력징후를 점검하는 등 경과관찰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다한 점, 클로자핀 복용력이나 정신분열병 증세가 망인의 사인인 폐동맥혈전색전증의 발생에 일정 정도 기여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점, 망인의 정신분열병 증상은 발병시 급격하게 악화될 수 있어 장기간의 입원치료가 필요하거나 증세가 중할 경우에는 지속적인 소득활동을 장담하기 어려운 점 등을 참작,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30%로 제한했다.

한편, 피고는 1월 2일 대법원에 상소, 최종 판결(2017다204681)을 받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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